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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이 묘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20/12/08 16:12 조회 : 1246

화성의 숨결을 찾아서..

홀란이 묘

김용국

 ‘홀란이’라 불린 아리따운 기생에 대한 이야기가 율천동에 전하고 있다. 먼저 율천동이란 동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율천동은 법정동인 율전동(栗田洞)과 천천동(泉川洞)에서 각각 한자씩을 따서 만들 것이다. 여기서 '율전'이란 고유어로 말하면 '밤밭'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율전’으로 말과 같이 이 지역에 유독 밤나무가 많았기에 유래된 것이다.

한편 '천천'이란 명칭은 다음의 유래를 갖고 있다. 이 곳에는 크고 작은 샘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큰 샘의 수량이 풍부하여 내[川]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내의 수량이 얼마나 풍부하던지 서호(西湖)를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내가 샘에서 발원하였다고 ‘샘내’라 했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천천(泉川)’이 된 것이다.

이러한 유래를 갖는 율천동(栗泉洞)에는 아리땁기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하는 기생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기생이 묻힌 무덤을 ‘홀란이 묘’라고 한다.

영생고등학교 정문을 등지고 좌측으로 영생교(永生橋)가 보이는데 영생교를 앞에 두고 우측으로 보이는 언덕에 ‘홀란이 묘’가 있었다고 한다(제보하는 이에 따라서 홀란이 묘는 영생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학교부지로 흡수되었다고도 한다). 옛날 그 곳에는 주막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 주막집에 있는 기생이 어찌나 인물이 곱던지 마을의 총각들이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러니 주막집은 늘 사내들로 북적거렸다.

주모로서는 장사가 잘되니 여간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정신을 빼앗긴 사내들은 때 없이 주막집 근처를 배회하였고, 대낮부터 주막에 들러 낮술에 취해 일손을 놓기가 일수였다. 그러니 마을 어른들이나 아낙들의 근심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이러다가는 농사를 그르칠 것이 뻔한 이치였다.

동네 사내들의 이런 행동은 비단 마을의 어른들과 아낙들만을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실은 그 아리따운 기생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늘 그녀 곁에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뭇 사내들이 언제나 따라 붙었고, 사내들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각양각색으로 구애의 방법을 동원했다. 이에 그 기생은 부담을 느꼈고, 이로 인해 괴로워하며 나날이 수척하여갔다. 그 아리따운 기생은 시름시름 앓더니만 그만 죽고 말았다.

그 아리땁던 기생이 죽자 마을의 사내들은 상심이 컸다. 그것도 자신들의 구애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자책감에 더욱 괴로워했다. 그만큼 이나 마을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홀란이’라고 한다. 여기서 ‘홀란이’란 ‘혼란이’를 발음대로 표기한 것으로 사내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지 기생의 이름이 홀란이였던 것은 아니다.

한편, 이 ‘홀란이 묘’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홀란이에게 연정을 품은 사내들 중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사내들은 저마다 홀란이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누구보다 홀란이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던 사내가 그만 상사병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애만 태우고 시름시름 앓더니만 끝내 죽고야 말았다. 그래서 홀란이에게 상사병이 들어 죽었다 하여 죽은 사내의 묘를 ‘홀란이 묘’라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은 아닐 것이다.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는 대상도 사랑의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것은 굳이 남녀간의 사랑만을 의미하지도 사랑의 관념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이며 그 관계를 어떻게 맺고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인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관계는 의미가 없다. ‘홀란이’를 죽음으로 내몬 사내들이나, ‘홀란이’의 사랑을 얻지 못해 죽음에 이른 사내나 문제가 있다. 그 것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정작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