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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광교칼럼] ‘길마재줄다리기’ 대보름에 볼 수는 없을까?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23/02/03 21:52 조회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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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어렸을 때 시골집에서는 땅콩과 호두 등 부럼을 깨고 나물반찬에 오곡밥을 먹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오곡밥이 싫었다. 흰쌀밥이 더 좋았다.

쌀밥은 설날과 추석, 조상 제삿날,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니까 평소엔 쌀이 없어서 보리나 조, 수수, 감자 등이 잔뜩 섞인 잡곡밥을 먹었단 얘기다.

정월대보름 무렵 내 단골식당에 가면 맛이나 보라며 주인장 가족이 먹던 대보름 나물이며 된장시래깃국 또는 토란국, 오곡밥을 내준다. 지금이야 없어서 못 먹는 건강식이므로 절대 사양하지 않고 잡곡 한톨, 국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준다.

죽 종류나 수제비 역시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칼국수는 어렸을 때 질리도록 먹었음에도 싫지 않다. 면류를 좋아하는 북쪽 사람의 DNA가 있는가보다.

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둔 2월 4일 수원화성행궁 광장에서는 수원문화원 주최 34회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린다.

수원문화원의 대보름 민속놀이 행사는 1988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2월29일 연무대에서 열린 수원화성축성 192주년 기념 ‘제1회 전국 민속 연날리기대회’로부터 비롯됐다. 연 높이 날리기, 연줄 끊기, 창작연 띄우기 등의 종목으로 진행, 성황을 이뤘다.

1989년 2월 19일 두 번째 행사부터 ‘대보름 민속놀이한마당’이 됐는데 시민들의 호응이 대단해 추운 날씨임에도 45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

대보름 민속놀이한마당에서는 수원지역의 전통 민속인 ‘길마재 줄다리기’가 열리기도 했다. 길마재줄다리기는 내가 발굴했다.

수원문화원은 1990년대부터 수원의 민속들을 발굴하기 시작, 그동안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많은 민속들이 세상으로 나왔다. 수원시 인구가 팽창되면서 아파트 단지나 공단이 들어서고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민속들이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나는 수원문화원의 의뢰로 ‘길마재 줄다리기’와 함께 ‘원천동 역말 서낭제·우물고사’와 ‘지동 호신당제’를 찾아냈다. 당시 지역 고로(古老)들의 생생한 증언과 현장 방문으로 보고서를 남길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당시 중부일보 문화부 차장이었던 나는 문화원의 부탁을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지역 노인, 당시 줄다리기 행사 임원들과의 수차례에 걸친 만남과 녹취, 사진촬영, 현장답사를 실시했다.

길마재 줄다리기는 수원시 이의동 하동과 현재 용인시 상현동 일대에서 실시되던 민속이다. 수원시 하동(길마재)과 용인시 상현동(독바위) 주민들이 함께 실시해왔는데 일명 ‘장대흥 묘전(張大興 墓前) 줄다리기’라고도 불린다.

길마재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대보름 다음날 수원시 하동 길마재와 용인 상현동 독바위 주민들이 두 마을 경계지점에 있는 길마재 장대흥 묘 앞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성한 수확을 빌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해 온 농경의식적 전통 민속놀이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다가 해방 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한동안 중단됐다. 1985년부터 재개돼 3년마다 실시됐지만 광교신도시 개발로 인해 지금은 현지에서 열리지 않는다. 대신 수원화성문화제 등 큰 행사 때에나 재연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년 전 이 지역엔 각종 전염병이 돌아 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어느 날 주민 장진종(張鎭宗)이란 사람의 꿈에 아버지 장이강(張以綱)이 나타났다. 장이강은 조선시대의 문관으로 대흥군수, 영릉참봉, 영월부사를 역임한 진천 장씨의 27세손이다. 대흥군수를 지냈다고 해서 장대흥(張大興)이라고도 불렸다. 세상을 떠난 후엔 상현동에 묻혔다. 후손들이 이 마을에 거주하며 산소를 돌보고 있었다.

아들 장진종에게 현몽한 장이강은 동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월 상달 첫 밤에 묘 아래에서 줄다리기를 하면 온 동민이 무사할 뿐 아니라 매년 풍년이 들어 만사가 대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줄다리기를 한 뒤부터 돌림병은 사라졌고 매년 풍년이 들어 주민들의 삶은 안락해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길마재 줄다리기는 다른 지방의 줄다리기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대부분의 줄다리기가 낮에 실시되는데 비해 길마재줄다리기는 밤에 열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부분 줄다리기가 정월대보름날에 실시되는 데 길마재는 다음날인 열엿새 날에 개최된다.

또 다른 지역의 줄다리기가 논이나 마을 길, 냇가 옆에서 열리지만 이 줄다리기는 무덤 앞에서 열린다는 것이 이채롭다.

길마재 줄다리기는 경기도민속경연대회 대상, 전국민속경연대회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3년엔 고색동의 전통 줄다리기인 코잡이놀이(수원시 향토유적 9호)에 이어 수원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됐으니 보존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고색동 코잡이놀이는 지금도 현장에서 재연되고 있으나. 길마재줄다리기는 마을이 모두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해 현장에서 할 수 없다. 대보름이 아닌 10월 수원화성문화제에서나 볼 수 있다.

예전처럼 대보름에 이 줄다리기를 할 수는 없을까?

[출처 : 수원일보]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