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원 방문을 환영합니다.

HOME  ·  지역정보  ·  문화유산  ·  수원설화

수원설화

계모와 전실아들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20/12/08 13:13 조회 : 1050

02.12.02

계모와 전실 아들

계모에 대한 두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먼저 옛이야기들 속에 등장하는 계모들의 악행은 상처(喪妻)한 홀아비뿐 아니라, 바람기 있는 사내들에게도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옛소설인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전]을 보더라도 계모의 악행은 극에 달해있다. 그러나 계모에 대한 거리감 내지 거부감은 비단 우리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콩쥐팥쥐전]와 같은 유형인 [신데렐라]에서 보여지듯 동서와 고금이 한결같이 계모의 외모나 행실을 극악무도한 인간형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같이 이혼률이 급증하는 시대에 “자식을 둔 부모가 이혼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식을 불행으로 빠뜨리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숨겨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한다면, 참으로 이말 자체가 무서운 예언을 담는 셈이다. 그러나 “오죽하면! 오죽했으면...” 그렇게 위안도 해보고 위로도 해본다. 사연이야 어찌되었건 이혼으로 인한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다.

사별한 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혼이란 예나 지금이나 안될 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살자는 그런 말은 아니다. 그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부부가 서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간혹 텔레비전에서 이혼경력이 있는 연예인들이 그것도 한 두 번, 아니 그 이상의 경력을 가진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혼과 결혼담을 소개하는 프로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공중파를 타고 서슴없이 무에 자랑이라고 말 삼아 말하는지... 어떤 순간엔 연예인들의 이혼에는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 들은 단지 상품일 뿐이다. 그러니 씁쓸할 밖에.

아무튼 계모의 구박은 전실 자식들을 성공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한다. 소개한 바 있는 ‘부자가 된 율전동의 전실아들’도 그렇고 여기서 이야기되는 전실 아들 형제도 그러하다. 이는 어쩜 힘겹게 살아야 하는 소외된 계층들에 대한 하나의 모범이며 위로요 격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아들 형제만을 둔 사람이 있었다. 아내를 잃은 그는 후처를 들이게 되었다. 큰 아들은 무척이나 영특하였다. 한 번 배우고 익힌 것은 잊지를 않았다. 둘째 아들도 사람 됨됨이가 훌륭하고 신체 건강하였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홀로된 외로움에 무척이나 괴로워하시던 아버지는 후처를 두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잘되어가 아버지의 외로움도 가시고 행복한 듯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전실에 대한 계모의 구박은 심하여 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계모는 포수에게 돈을 주고 전실의 자식을 죽여달라고 하였다. 포수는 두 아이를 깊은 산 속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가면서 보니 아이들이 참으로 측은하였다. 비록 아이들을 죽이는 대가로 돈은 받았으나 차마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한 포수는 계모와의 일을 알려주곤 아이들을 도망가게 하였다.

이리하여 도망하게 된 두 아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살다가 훗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갔다. 큰 아들은 길을 가다가 어느 마을의 서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글을 잘못 읽고 있었다. 이에 그 아이에게 잘못 읽을 부분을 가르쳐 주었다. 이를 안 아이의 부모는 그가 똑똑한 청년임을 알아보고는 사위로 삼아 함께 살기로 하였다.

한편 동생은 길을 가다가 어떤 집 앞에 이르게 되었는데 마당에 있는 말꾼들이 저 집에는 사람이 들어가기만 하면 죽는다고 하며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체 건강하고 용맹한 동생은 궁금증만 더해 가는 것이었다. 그래 까짓 것 한 번 들어가나 보자 싶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래 들어가 보니 색시가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색시는 자신의 사연을 속속들이 말하고는 자신도 혼자이니 함께 살자는 것이었다. 둘은 마음을 합쳐 함께 살아갔다.

형제가 각자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어느덧 서로가 약속한 기일이 되었다. 형제는 길을 떠나 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고향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집에 당도하니 못된 계모는 아버지 조차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두 아들은 아버지를 모셔다가 행복하게 살았다 한다.